본문 바로가기
  • 당신의 지겨운 슬픔에게

분류 전체보기11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2023. 9. 1.
우리를 샷건과 아버지들의 자살로부터 구원해주소서 우리를 샷건과 아버지들의 자살로부터 구원해주소서 - 존 베리먼 중 우울한 영혼과 복잡한 영혼은 서로 끌린다는 사실과 그 끝이 대부분 비극일 거라는 믿음. 위의 구절은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출연한 올리브 키터리지 시리즈 중 2화에서 케빈과 오케이시 선생의 에피소드에 나오는 존 베리먼 시의 일부이다. 4편이 전부인 이 드라마를 마치자마자 알라딘을 켜고 2권의 올리브 시리즈 리커버 특별판을 주문했다. 심지어 오만과 편견 초판본 커버의 발매트를 함께 주문했는데 아무런 계획이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 굿즈를 끼워파는 알라딘의 기술이란. 책을 다 읽고나면 고약하고 이기적이고 독설을 내뱉고 절대 사과라는 걸 하지 않지만 돌아서서 오랜 시선을 보낼 줄은 아는 이 노년의 여성을 사랑하게 될런지 궁금하다. 2023. 3. 18.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누구의 잠도 되지 않겠다는 갈망이여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누구의 잠도 되지 않겠다는 갈망이여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 2023. 3. 14.
절대 잊지 말라 저녁이 따스하게 감싸 주지 않는 힘겹고, 뜨겁기만 한 낮은 없다. 무자비하고 사납고 소란스러웠던 날도 어머니 같은 밤이 감싸 안아 주리라. 오 가슴이여, 그대 스스로를 위로하라. 그리움을 견디기 어려워도 어머니처럼 부드럽게 너를 감싸 줄 밤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리니. 쉴 새 없이 헤매던 방랑객에게 그것은 침대요, 관이 되리라. 낯선 손길이 마련해 준 그 안에서 그대는 마침내 쉬게 되리니. 흥분한 가슴이여 잊지 말라. 그 어떤 기쁨도 진정으로 사랑하라. 영원한 안식을 취하기 전에 아픈 통증까지도 사랑하라. 저녁이 따스하게 감싸 주지 않는 힘겹고, 뜨겁기만 한 낮은 없다. 무자비하고 사납고 소란스러웠던 날도 어머니 같은 밤이 감싸 안아 주리라. 헤르만 헤세 《삶을 견디는 기쁨》 중 2023. 3. 14.
돌이킬 수 없을까봐 두려워서 그 누구에게도 솔직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을까봐 두려워서 그 누구에게도 솔직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주고서 안전하게 솔직해지는 경험을 사는데, 그 대상이 불법이거나 음험한 영역이 아니라 정신과 전문의 혹은 심리치료사 같은 근사한 영역이라는 것에 위안과 안도감을 얻으면서 말이다. 나는 솔직해지는 걸 아주 불편해하는 사람이었는데, 유일하게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이 글을 쓸 때였다. 글을 쓰다가 아주 솔직해지는 나 자신을 마주하면 늘어지듯 편안해지면서 아주 천진하면서도 티가 없는 주인공이 된 것 같아 기분이 꽤 괜찮았다. 어째서 솔직함이 고통인 인간이 그토록 즐겁기만 했다는 건지 돌이켜 보면, 실은 어느 순간인가부터 솔직해지는 척, 모두 앞에서 완전히 무너질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인 척 연기하면서 여전히 가장 내밀하고 상스.. 2023. 2. 26.
사람들은 외롭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슬픔은 당신이 유리로 된 아주 높은 건물의 긴 외벽을 미끄러져 내려오는데 당신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외롭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아는 사람들에겐 할 수 없다. 같이 있어서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사람은 윌리엄이 유일하다고. 그가 내가 가져본 유일한 집이라고. 내가 파티에서 그냥 나와버리지 않았다면 팬 칼슨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상대 말고는 아무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들, 그런 걸 느끼고 살면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 친밀함은 그렇게 지긋지긋한 것이 되었다. 그것이 삶이 흘러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너무 늦을 때까지 모른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 2023. 2. 26.
축축하고 쓴 추억의 냄새가 났다. 전나무는 향기를 뿜으며 이제 더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이야기를 속삭였다. 축축하고 쓴 추억의 냄새가 났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2023. 2. 25.
그 우물은 나의 젊은 영혼이었다. 돌 하나가 우물 안에 던져졌고, 그 우물은 나의 젊은 영혼이었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물이 만든 그림자 같은 건 어쩐지 영겁을 지나온 바람이 수면 위에 만들어온 나이테 같아서 바라보고 있으면 영원히 시간을 놓아버릴 것 같다. 2023. 2. 25.
오랜 시간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볼지니. 오랜 시간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볼지니. - 니체 - 라트비아 출신의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가 부른 브라질 작곡가 빌라-로부스의 '브라질풍의 바흐' __ 1995년에 발매된 이네사 갈란테의 앨범에는 그녀를 마리아 칼라스에 비견하는 스타로 만들어준 카치니의 'Ave Maria'가 바흐의 아베 마리아와 나란히 실려있다. 많은 곡들이 아름답지만 이 곡 'Bachianas Brasileras No.5'가 그 중 가장 비극적이라 좋았다. 2023. 2. 24.